자구계획 뒷받침하는 수준 불과…“업계에 맡기는 것 긍정적”

4월 총선 이후 매섭게 불어 닥쳤던 조선업 구조조정 광풍을 잠재울 정부 종합대책이 6개월 만에 나왔다. 수억원을 들여 컨설팅을 맡기는 등 요란을 떨었지만, 대책에 담긴 내용은 조선사가 각자 추진하고 있는 자구계획을 뒷받침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럴 것이면 지금까지 왜 그 난리를 쳤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구조조정을 업계에 맡기고 지원역할만 하겠다는 방향을 정한 것이 다행이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정부는 10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주재로 ‘제6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조선ㆍ해운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확정ㆍ발표했다.

조선업종에 대해서는 조선사 자율로 고강도 자구노력을 진행해 설비 및 인력을 축소하고, 핵심역량에 집중하면서 유망 신산업을 발굴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조선사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을 전제로 총 11조원 규모의 신조선 발주와 7500억원 규모의 R&D 투자, 전문인력 6600명 양성 등을 당근으로 제시했다.

또한, 사업재편 자금 등 2.7조원을 투입해 대형선박 수리자급률을 10% 이상으로 확대하고, 해양플랜트 서비스산업, LNG벙커링 사업 진출을 지원해 신조선 건조에 집중돼 있는 조선산업을 고부가 선박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안도 마련했다.

대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1조원 규모의 신조선 발주 추진이 첫 번째로 담겼다. 현재 수주절벽 상황에서 조선사 생존이 급선무라는 판단이다.

정부는 2018년까지 군함, 경비정, 관공선 등 공공선박 63척 이상을 조기에 발주해 2020년까지도 신조발주가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대비하기로 했다. 공공선 발주규모만 7.5조원에 달한다.

이와 함께 2020년까지 3.7조원의 자금을 지원해 국내 선주들이 총 190여척을 자국발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6조원 규모의 신조지원프로그램, 에코쉽펀드 1조원, 여객선 현대화펀드 1천억원을 통해 75척을, 대출상환기간 연장 및 담보 인정비율 상향 등을 통해 중소형선박 115척 발주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21%에 불과한 자국발주 비중을 일본(80%)이나 중국(69%)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올릴 계획이다.

대규모 발주지원은 조선업계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다. 대형3사는 수주감소에 대비해 2018년까지 도크를 31개에서 24개로 23% 줄이고, 인력규모도 6.2만명에서 4.2만명으로 32% 줄이는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있다. 정부는 채권단과 함께 조선사들의 자구계획 이행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이행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덩치를 줄이는 방식의 자구계획을 뒷받침하는 한편, 조선업계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유망 신산업 발굴도 적극 지원한다. 현대중공업은 건조를 넘어 기자재 조달, 수리 등 서비스업과 해외 조선소 건설 컨설팅, LNG벙커링 분야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상선부문을 친환경, 고부가선에 집중하고, 해양부문에서는 서비스산업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경쟁력을 갖춘 LNG선과 메가 컨테이너선 분야에 집중하는 한편, 차세대 선박추진체계 개발에 힘쓰고 있다. 중소조선사들은 신조선 사업을 특정 선종으로 특화하는 방향과 대형 조선사의 하청공장 역할을 담당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각 조선사들의 사업재편이 신속하고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기활법을 통한 제도적 뒷받침에 나서고, R&D 및 세제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R&D 지원규모는 민관공동으로 향후 5년간 7500억원에 달한다. 전문인력 양성 규모도 6600명에 달한다. 무평형수 선박, LNG추진선 핵심기술 등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2020년까지 2400억원을 투자해 스마트선박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ICT를 활용한 스마트조선소를 중소조선소로 확대 보급할 계획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 해양플랜트 분야에 대해서도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플랜트 설계전문 조인트벤처 설립을 지원하고, 해양플랜트 기자재 국산화율을 2020년까지 25%에서 40%로 높일 수 있도록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설계 전문인력도 800명 이상 양성하기로 했다.

중국에 넘어간 벌크선, 중소형 탱커 시장은 포기하되, 중소조선소 생존을 위해 경비정, 순찰선 등 특수선과 여객선, 카페리 등에 대한 지원방안도 마련했다. 2019년까지 특수선 핵심기술을 자체개발하고,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며, 중소조선소를 위한 10종의 표준선형을 개발한다. 레저선박에 대한 국산화율도 2020년까지 60%로 높일 계획이다.

정부는 조선산업에 대한 당근과 채찍을 통해 국내 조선산업이 고부가 선박산업으로 변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조선 건조에 집중된 산업이 연간 시장규모 1천억 달러에 달하는 선박ㆍ해양플랜트 서비스산업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우선 3만톤 이상 선박의 수리가 가능한 조선소가 현재 1개에서 2020년까지 3개 이상으로 확대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총 2.7조원에 달하는 사업재편 지원자금을 활용할 계획이며, 가스공사를 비롯한 공기업의 보유 선박 수리물량을 국내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한다. 2015년 기준으로 1.3%에 불과한 대형선 수리 자급률을 2020년까지 1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수리 부문은 인건비가 관건인데, LNG선과 메가 컨테이너선 등에 집중할 경우 고부가가치 창출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도 연간 800억 달러에 달하는 유지ㆍ보수 시장 진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2019년 생산이 종료되는 동해 가스전 해체사업을 통해 트랙 레코드를 확보한다면 해외시장 진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NG벙커링 분야도 신규 유망사업으로 선정하며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관련법 개정을 통해 LNG벙커링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벙커링이 가능한 LNG인수기지를 2020년까지 3개 이상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한국LNG벙커링산업협회 등을 통해 LNG벙커링 선박을 발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이행상황을 기업ㆍ산업 구조조정 분과회의와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기업구조조정분과회의를 통해 기업별 자구계획 이행상황, 경영정상화 수준 등을 매달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산업구조조정분과회의에서 경쟁력 강화방안 추진상황, 기업활력법 등을 통한 기업의 자율ㆍ선제적 사업재편 지원현황 등을 수시로 점검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조선산업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했으나, 실제 시장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으므로 향후 시장여건 변화, 경쟁력 강화방안 추진상황 등을 고려해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정기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다.


△ “장고했지만 악수 아니라 다행”

이번 정부 방안에 대해 업계에서는 ‘앙꼬 없는 찐빵’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고 있다. 조선사들이 경영전략 및 자구계획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사안이 그대로 담긴데다, 신조발주 지원도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됐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발주 지원 규모가 7조원에서 11조원으로 확대된 것 정도가 달라진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정부에서 나온 것은 지금까지 채권단과 조선사들이 마련한 방안에서 새로운 것이 없다”며 “이러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조선업을 경쟁력 없는 사양산업이자 세금 잡아먹는 문제산업으로 매도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정부가 공헌했던 대로 구조조정을 업계 자율에 맡기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조선업에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정부가 구조조정과 업계 재편을 주도할 경우 조선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됐었다”면서 “정부 대책이 주도권을 업계에 넘기고 지원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천만 다행이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대책의 방향을 결정할 맥킨지 보고서가 일본 조선업계 구조조정 사례를 참고했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정부가 대대적인 설비감축을 대책에 담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면서 “구조조정 광풍을 야기하며 업계 위기감만 키워왔던 정부가 뒤늦게나마 정치ㆍ금융 논리에서 벗어난 대책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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