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됐던 조직 화합하는데 진력하겠다"

▲ 정태길 위원장
갈라진지 3년, 다시는 합치지 못할 것처럼 반목하고 갈등을 빚어왔던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해상노련)과 전국상선선원노동조합연맹(상선연맹)이 1년여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드디어 합병 계약서를 체결했다.

불과 1년전만 하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웠던 양 연맹의 합병이 어느덧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어떻게 1년만에 불가능했던 양 연맹의 합병이 눈 앞에 다가오게 됐을까? 이런 반전 드라마를 써낸 장본인이 바로 한국해운신문 올해의 인물 협회단체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 정태길 위원장이다.

해상노련 정태길 위원장은 인생 자체를 끊임 없는 도전과 반전의 연속 속에 살아온 인물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만15세에 연안 통발어선 조리원으로 시작해 10여년 뱃사람으로 일했고 선원노동운동을 시작해 37세에 위원장 선거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정수기 영업 사원으로 변신, 10주 연속 전국정수기 판매왕을 따내기도 했다. 잘 나가던 정수기 영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다시 노조 말단 임시직원으로 들어가 4년만에 위원장으로 당선돼 내리 5선 위원장이 됐다.

정태길 위원장은 올해초 진행된 해상노련 제29대 위원장 선거에서 선거대책본부장도 없이 혼자 선거운동을 벌여 예상을 뒤엎고 전임 염경두 위원장을 4표차로 꺾는 파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도전과 반전의 삶을 살아온 정태길 위원장이 29대 위원장으로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양 연맹의 통합이 큰 진전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위원장은 해상노련위원장에 취임하자 마자 갈라진 조직으로는 해상 선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해 낼 수 없다는 강한 신념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연맹 통합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결국 합병계약서에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어렵사리 연맹위원장이 됐지만 갈라졌던 양연맹이 합병되면 자칫 자신의 보장된 임기가 날라갈 수도 있음에도 자신의 직을 내려 놓고 연맹 통합을 추진했던 것이다.

자신의 직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연맹 통합을 추진해왔던 정 위원장이 내년 1월말이나 2월중으로 출범하게 되는 신설연맹인 '전국선원노동조합연맹'의 첫 통합 위원장으로 추대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로 거론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그가 그동안 자신의 삶속에서 부단히 외쳐왔던 '포기하지말고 도전하자'는 모토가 반전 아닌 반전드라마를 쓰고 있는 것이다.

정태길 위원장을 만나 연맹 통합을 추진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앞으로의 계획 들에 대해 들어봤다.

-어렵사리 합병 계약을 체결하셨다.
=3년간 분열됐던 조직을 다시 하나로 합병을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2016년 9월 싱가포르에서 국제운수노련(ITF) 중재로 연맹 합병을 위한 첫 번째 합의를 했다. 이후 1년여에 걸쳐 22차례 협상을 진행, 올해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양 연맹을 신설 합병키로 큰 틀에서 합의했다. 그리고 거의 4개월에 거쳐 10여차례 협상을 통해 연맹 합병을 위한 핵심쟁점에 합의하고 12월 4일 합병계약을 체결했다.

협상이 1년 넘게 늘어지면서 한때 구심점을 잃기도 하고 합병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조직들도 일부 있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이 통합되지 못하면 해상에서 대정부와 대사용주를 상대로 해상 선원들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저의 신념에 많은 분들이 동의해주셨고 양 연맹이 서로의 이해와 양보 속에 합병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합병 절차는 어떻게 되나?
=합병 계약을 체결하기는 했지만 양연맹 대의원들로부터 추인을 받아야 한다. 합병 추인을 받으려면 대의원 2/3의 동의를 얻어야하는데 이것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오는 27일 해상연맹과 상선연맹이 동시에 각자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합병 계약서를 추인 받을 예정인데  두 연맹중 하나라도 추인을 받지 못하면 합병이 무산되므로 열심히 조합원들을 만나 합병의 취지를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합병 계약서를 승인해주신다면 양 연맹별로 5명씩 설립추진위원을 구성하고 지금까지 합의한 내용들을 반영해 규약과 규정을 새로 만드는 등 신설 합병 조직을 출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새로운 연맹의 출범 시점은 규약과 규정을 만드는 작업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빠르면 1월말, 늦어도 2월중으로 가능하리라고 본다.

-합병연맹 위원장으로 추대되시는 건가?
=신설합병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 상임부위원장, 비상임부위원장 등 임원을 선출할 계획인데 위원장은 통합이라는 취지를 살려 단독 후보를 추대해 선출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제가 추대된다는 보장은 없고 경선과정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제가 합병을 추진한 것은 저의 직을 비롯한 모든 것을 내려놓는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결코 합병 논의가 진행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합병연맹 위원장으로 추대된다면 최우선적으로 어떤일을 추진하겠는가?
=조직을 하나로 규합하는 일이다. 양연맹은 지난 3년간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겪어왔기 때문에 다시 분열되지 않으려면 조직을 하나로 화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가장 급선무다. 당초 해운과 수산 산업별 2명의 상임부위원장을 두려다가 1명으로 바꾼 것도 조직의 화합 때문이다.

산업별 상임부위원장제도 사실 산업별 공동위원장 제도를 요구하는 상선연맹측에 우리가 역 제안했던 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상임부위원장 1인으로 바꾸자고 다시 요구했던 것은 산업별 상임부위원장제도를 도입할 경우 해운과 수산의 조직이 또다시 갈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선배님들과 여러 노조원들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진정성을 상선연맹측이 이해하고 수락해준 것이다.

조직 화합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제가 29대 연맹위원장으로 당선되면서 약속했던 선원퇴직연금제도 조기 도입, 국가 필수선박 및 지정선박 현실에 맞게 확대, 어선의 선원법 적용범위 15톤으로 확대, ITF 등 국제노동외교 강화 및 전략적 접근, 정부가 강제 시행하는 금어기간 중 어선원 생계 보상 등 5대 핵심 공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

-상임부위원장에게 위원장 권한을 일부 양도한다고 들었다.
=현재 해상노련 시스템은 위원장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다. 사실 우리가 3개로 분열됐던 원인중 하나가 전임위원장이 자기사람들로만 비상임부위원장, 중앙위원 등 요직을 채우고 반대파는 내치는 등 권력을 제대로 배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설되는 연맹은 해운과 수산, 또는 수산과 해운이 런닝 메이트가 되는 위원장과 상임부위원장이 권한을 나눠 갖게 된다. 상임부위원장은 해당산업 사용자 단체와 단체교섭권을 갖고 합의사항에 대한 1차 서명권도 갖게 되며 위원장 부재시 위원장 업무도 대행하게 된다.

그동안 비상임부위원장이 위원장 업무를 대행하기도 했지만 비상임이다 보니 연맹 시스템에 익숙치 않아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었다. 위원장 부재시 상임부위원장이 그 역할을 대행활 수 있도록 하고 권력을 배분하는 것이 연맹을 화합시키고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선원노동을 하시게 됐나?
=거제도에서 태어나 은행원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만15세에 연안통발어선 조리원으로 선원생활을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뱃사람이 됐지만 선장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고 일과 공부를 병행한 끝에 을종이등항해사(5급 해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선에서 내려 부산과 거제도를 오가는 여객선 항해사가 됐는데 선주들의 부당한 처우에 신음하는 선원들을 보면서 육상처럼 선원들도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여러 선배들을 만나면서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됐다. 결국 선장이 되겠다는 나의 두번째 꿈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국적선해운선원노조 창립멤버로 본격적인 선원노동운동을 시작했고 부산지역 연안여객선 12척의 동시파업을 주도해 선원들의 처우를 개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해외취업수산노조, 전국선망선원노조 등을 설립하는데 참여했고 노조위원장이 돼서 선원들을 위해 일해보고 싶다는 세번재 꿈을 갖게 됐다.

선망선원노조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37세에 과감히 위원장 선고에 도전했지만 3표차로 낙선했다. 낙선하면서 노동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생계를 위해 국내 굴지의 정수기 영업사원으로 변신했다.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방법, 영업 및 마케팅 노하우를 배우면서  10주 연속 전국판매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렇게 영업사원으로 2년 정도 활동하자 자신감이 생겨났고 다시 제 꿈인 노조위원장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가족들과 회사에서 반대에도 판매사원을 그만두고 전국선망선원노조 말단 임시직으로 다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다시 노동운동을 시작하면서 고등하교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을 공부했다. 그렇게 노동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교섭부 차장, 조직부장을 거쳐 4년만에 다시 위원장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내리 5번을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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