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을 극복하고 들어간 대한해운공사

▲ 박종규 회장
그 당시 정치학과 출신들은 한국은행에 많이 갔고, 기자 시험도 많이 봤다. 나도 정치학과 졸업을 앞두고 한국은행을 가고 싶었다. 당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다닐만한 좋은 직장이라는 것이 몇 군데 없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행은 월급도 많이 주고 모두들 알아주는 좋은 직장,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었다. 그래서 나도 한국은행 시험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도서관에 다니며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한국은행을 들어가려고 하니, 경제원론 정도는 좀 배웠지만, 상법에 대해서는 전혀 배운 일이 없어서 걱정이었다. 그래서 서동각 교수의 상법학 강의를 듣기 위해 문리대에서 월담을 하여 법대로 넘어가 도강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상법학 강의는 참으로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월담하여 법대를 왔다 갔다 하던 그 때, 법대 게시판에 붙어있는 ‘대한해운공사 사원 모집’ 광고를 우연하게 보게 됐다.

그런데 그 사원 모집 광고를 자세히 보니 상대와 법대 출신만을 뽑는 것이었다. 문리대 정치학과를 뽑는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회사에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은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번 시험을 쳐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먼저 입사 원서를 받기 위해 당시에 남대문 오른편에 있었던 대한해운공사를 찾아갔다. 총무과에 가서 시험을 보고 싶으니 입사 원서를 좀 달라고 하자, 담당 직원이 무슨 과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치학과라고 했더니 “정치과는 해당 사항이 없다”며 입사원서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시험을 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좀 가르쳐 달라고 담당 직원을 졸랐다. 담당직원은 꼭 시험을 보고 싶다면 문리대 학장님의 추천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당시 서울대 문리대 이희승 학장을 찾아 갔다.

내가 학장님께 “입사 시험을 보려고 하는데 학장님의 추천서를 받아 오라고 합니다”고 말했더니 이희승 학장이 “뭐? 나에게는 그런 의뢰서가 온 것이 없는데. 그 회사 의뢰서를 하나 받아 가지고 오면 내가 추천서를 써 주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회사와 학교가 서로 핑퐁을 치는 것이다.

사실 이 때 포기를 할까 하다가 나도 모르게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나 끝까지 한번 해보겠다고 결심을 하고 다시 해운공사를 찾아갔다. 예상했던 대로 담당직원은 회사에서는 의뢰서 같은 것을 해줄 이유가 없다며 딱 거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험만 보자는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하느냐며 제발 시험만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시험을 칠 수 있는 방법을 좀 가르쳐 달라고 붙들고 매달린 것이다.

담당직원은 내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좀 딱해 보였던지 한참 생각하더니 “국회의원 추천서를 받아오면 시험은 보게 해 줄지 모르겠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 번쩍하고 내 뇌리에 스치는 사람이 있었다. 국회의원(참의원)을 하고 있던 김용주씨였다.

김용주 의원은 나의 부친과 함께 진주사범을 함께 나온 동창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이 바로 대한해운공사 초대 사장을 하신 분이었다. 내가 입사할 당시 석두옥 사장은 김용주 사장 때 임원을 하던 분이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한걸음에 김용주 의원에게 달려가 아버님 성함을 고하고 “둘째 아들입니다. 회사에 입사하는데 추천서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김용주 의원이 “아버님 소식은 없는가?”라고 묻기에 “소식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자신의 명함을 꺼내서 뒷면에다가 ‘추천함’이라고 쓰고는 자신의 도장을 날인하여 나에게 주었다. 나는 거듭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대한해운공사 총무부로 와서 그 ‘명함 추천서’를 제출했다.
▲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1번지에 위치했던 대한해운공사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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