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바람 중국, 전통의 관광 명소 위해

▲ 이튿날 아침 군산펄호가 석도항에 접안했다.

생각보다 큰 석도항, 터미널은 개선 필요

선상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같이 방을 쓴 동료 기자가 행여나 필자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칠까, 잠자리가 바뀌어 잠을 못 이루지는 않을까 내심 우려했지만 둘 다 모두 꿀잠을 잔 듯 개운했다. 배를 타고 여행을 갈 때마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패했다.

본래 아침을 잘 챙겨 먹지는 않지만 여행 기간 동안에는 잘 먹고 잘 자는 게 최고라는 신념 아래 졸린 눈을 부비며 5층 식당으로 내려가 간단히 조식을 먹었다. 이제 배에서 내리면 한국 음식은 구경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 그릇쯤은 우습게 비워낼 수 있었다.

선실로 돌아와 딸린 화장실에서 여유롭게 샤워를 하고나니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묵은 피로가 다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화장실의 수압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배에 딸린 화장실의 수압은 으레 약할 것이라 지레짐작했으나 조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너무 세서 물줄기가 몸을 강타하는 지경이었다. 예상외로 센 수압에 감탄하며 멀끔히 샤워를 하고 하선 채비를 마친 뒤 갑판엘 나와 보니 저 멀리 중국 석도항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덧 나타난 터그보트가 군산펄호와 어깨동무를 하며 석도항 접안을 돕고 있었다.

▲ 접안을 돕는 터그보트가 붙으면 입항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석도항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 필자가 생각했던 석도항의 이미지는 중국 제2의 어촌도시이자 ‘중국 불법 어선의 전진기지’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목도한 석도항은 생각보다 큰 규모를 자랑했다.

석도항은 컨테이너터미널과 여객터미널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여행에 동행한 석도국제훼리 손정표 차장은 석도 주재원 초창기 때만 해도 석도는 말 그대로 어촌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한중 카페리항로가 개설된 이후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지금은 연간 80만teu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 한다고 하니 웬만한 중형 컨테이너 항만 부럽지 않은 규모였다.

석도시는 산동반도 최동단에 위치한 지역으로 예전에는 적산포(赤山浦)라 불리웠다.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개척했던 해상 무역로의 기착지로 유명한 곳인데, 당시에는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신라방이 존재했고, 때문에 석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장보고가 설립한 적산법화원이며 장보고 유적을 찾아서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명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군산펄호에서 하선해 셔틀버스에 올라 10분가량을 이동하니 조그마한 석도항국제여객터미널이 나왔다. 국제여객터미널이라고 말하기에는 흡사 우리나라 지방 고속버스터미널을 연상케 하는 등 규모가 조금 옹색했다. 세관 등 나름 갖출 것은 갖추고 있긴 했지만 여객을 위한 편의시설 등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앞으로 한중 카페리가 보다 활성화되고 더 많은 관광객이 석도항을 찾게 될 것을 대비한다면 국제여객터미널의 개·보수 내지는 증축이 시급해 보였다.

▲ 멀리 보이는 석도항의 모습.

산동반도의 첫 기착지, 위해 입성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는 위해에 위치해 있었다. 앞서 언급한 적산법화원은 석도시에 위치해 있었지만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법화원은 마지막 날을 위해 아껴두기로 하고 석도국제훼리에서 제공한 버스에 올라 위해로 넘어갔다.

▲ 중국의 항만 친수공간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위해는 석도항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바깥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는데 그것은 바로 해안가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항만 친수공간 때문이었다. 10여 년 전 중국 연태를 방문했을 때에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중국의 항만 친수공간 조성은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때의 그 기분을 1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똑같이 느끼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묘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왜 제자리걸음일까 하는 마음에 속이 쓰리기도 했다.

또 하나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차창 밖으로 비춰지는 석도와 위해의 풍경들이었다. 그동안 중국이라고 하면 북경, 상해, 청도, 연태, 장가계, 심지어는 이번에 방문한 위해까지 적지 않은 도시를 관광 및 비즈니스를 핑계로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느꼈던 점은 무언가 ‘정돈되어 있지 않음’에 대한 혼란스러움이었다. 마치 우리네 7~80년대의 생활상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러한 모습들을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목격한 후부터는 중국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이 창피하지만 솔직한 속내였다.

▲ 해안가 전망 좋은 자리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

하지만 이번에 바라본 석도와 위해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리는 구획을 나눠 놓은 듯 깔끔하고 깨끗이 정돈된 모습이었으며, 전망 좋은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곳곳에는 새롭게 올라가는 건물들과 거리 전체를 리뉴얼할 법한 대규모의 공사가 일사분란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거리엔 활기가 넘치는 듯 했다. 필자는 그제야 자신의 무지함과 편협함을 반성했다.

위해에 도착해 2박 3일간 묵을 호텔에 짐을 풀고 곧장 점심 식사에 나섰다. 위해 시내에는 ‘한락방’이라고 하는 코리아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다. 거리의 간판은 대부분 한글이었고 한국에서 흔히 보던 체인 음식점들도 더러 눈에 띄어 조금 과장한다면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한락방 내에 위치한 식당들 역시 중국 조선족 동포나 한인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아서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한국 관광객들도 부담 없이 음식을 즐기기에 적합했다. 필자의 이런 걱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점심은 한락방 내에 위치한 조선족 동포가 운영하는 한국식 중식당에서 먹게 됐다.

필자는 짬뽕을 시켰는데 우선 첫 번째로는 양에 놀라고 두 번째로 맛에 놀랐다. 그릇 가득히 나온 짬뽕에는 석도가 중국 제2의 어항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신선한 해물로 가득차 있었으며 맛 또한 일품이었다. 중국 출장 온 김에 다이어트나 하자고 마음먹었던 필자의 결심이 첫 식사부터 무너진 순간이었다.

각양각색 해양 생물의 보고, 신유해양세계

▲ 신유해양세계 정문 모습.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크게 없어 한산하다.

중국에서의 첫 식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본격적인 위해 관광에 나섰다. 첫날 관광지는 위해 시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신유해양세계’라는 대형 수족관이었다. 우리로 치자면 아쿠아리움인데 산동성 화하문화관광그룹이 투자해 만든 것으로 화하수족관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화하수족관은 어류포함세계, 열대우림 비밀국경, 산호해, 각색 해파리계, 신유해공, 해저환상세계, 해저터널, 극지풍광, 해양극장 등 총 9개의 구로 나뉘어져 각각의 성격에 맞게 생물 군이 나뉘어져 있었고 어민들의 전통 어업활동 모습도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이 있었다.

방문했던 날이 일요일인 터라 사람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예상외로 한산해 큰 불편 없이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군데군데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온듯한 중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을 뿐 입장을 위해 줄을 서야하지도, 긴 시간을 대기할 필요도 없이 바로 입장권을 끊어 입장할 수 있었다.

수족관을 천천히 둘러보며 평소 한국에서는 큰맘 먹고 교외 동물원이나 시내 아쿠아리움에나 가야 볼법한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의 신기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주말에 쉬기 바빠 아쿠아리움 한번 가보고 싶다던 아내의 부탁을 내심 모른 체했던 자신을 반성함과 동시에 아직 구체적인 2세 계획은 없지만 아이가 생긴다면 함께 오면 참 좋은 관람코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고래쇼를 비롯해 4D를 뛰어넘는 5D를 체험할 수 있는 극장도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생략해야 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 신기한 각종 해양 동물들의 모습.

청나라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유공도

위해에서의 이튿날 역시 관광의 연속이었다. 이튿날은 배를 타고 유공도라는 섬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유공도는 드넓은 중국에서도 66개 밖에 되지 않는 5A급 경승지 중 하나로 우리에게는 청일전쟁으로 잘 알려진, 1984년 청나라와 일본의 갑오전쟁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또한 청나라 말기 중국 최초의 현대화된 해군이자 청일전쟁 이전까지 극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함대로 손꼽혔던 북양함대의 탄생지이며 최후의 전멸지이기도 하다.

▲ 유공도로 들어가는 페리를 타기 위한 터미널 모습. 한가할 것이라는 생각은 크나 큰 오산이었다.

유공도로 향하는 여객선을 타기 위해 아침 일찍 터미널로 향했다. 전날인 일요일에도 ‘신유해양세계’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 평일인 월요일에는 더욱 더 여유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크나 큰 오산이었다. 유공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한 터미널은 중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페리에 몸을 실을 수가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국에서도 위해 지역은 바다가 인접해 있다 보니 중국 내 여름철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유공도는 중국인들의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는 탓에 일반인들 뿐 아니라 당 간부들의 안보 및 정신 교육의 장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고 때문에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라고 한다. 특히 국경절 기간에는 유공도에 엄청난 중국 관광객들이 몰린다고 했다.

▲ 유공도로 들어가기 위해 탄 페리.

여객선으로 15분 가량을 내쳐 달려 유공도에 도착했다. 조금 걷다 보니 저 멀리 유공도의 상징과도 같은 망원경을 응시하고 있는 거대한 동상과 ‘중국갑오전쟁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동상의 주인공은 북양함대 최후의 제독 정여창 장군이다. 우리에게는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을 중국으로 압송해간 인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중국인들에게 이 정여창 장군은 유공도에서 북양함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북양함대가 전멸하고 전세가 기울자 남은 부하와 주민을 구하기 위해 항복하고 자살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 유공도 내 위치한 '중국갑오전쟁박물관'. 멀리 정여창 장군의 동상이 눈에 띈다.

박물관 내부에는 청일전쟁 당시 유물 및 사료뿐만 아니라 사진, 그림, 영상, 그 당시 상황을 재현한 마네킹 등 다양한 형식을 이용해 청일전쟁의 히스토리를 묘사해 놓고 있어 청일전쟁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모르는 사람도 잘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우리가 관람을 한 날에도 역시 당 간부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 내부를 엄숙한 분위길 관람하고 있어 그 또한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시간 관계상 갑오전쟁박물관 밖에 들르지 못했으나 유공도에는 정여창 장군이 살았던 가옥 옛터와 철부두 및 포대, 영혼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충혼비, 중국병장기의 발전사를 보여주는 중화병장기관, 원시림의 모습을 재현한 국가삼림공원 등 다양한 유적과 볼거리가 있다고 한다. 중국인이 아니더라도 역사를 좋아하고 또 밀리터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방문 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니 여권은 필수다.

▲ 중국갑오전쟁박물관 내 여러 유적 및 사료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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