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정동국제 서동희 대표변호사

▲ 서동희 변호사

플랫 랙 컨테이너에 적입된 화물이 갑판적으로 운송되다가 화물손상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의 원인과 관련해 자주 이견이 생기는 부분이 그 화물을 플랫 랙 컨테이너에 충실하게 고박했는지, 아니면 고박이 불량했는지의 문제이다. 더구나 이 문제는 플랫 랙 컨테이너의 갑판적 운송으로 인해 화물손상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지와 연결돼 나름 복잡한 문제가 된다. 갑판적으로 운송될 때 적지 않은 경우 적하보험의 특별 약관인 갑판적 약관의 작동에 의해 담보범위가 자동적으로 축소되고, 적지 않은 경우 피보험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점도 역시 이러한 사안에서 자주 발생하고 그래서 사건을 더 복잡하게 한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판결들도 있고, 하급심 판결들도 있지만, 이에 관한 법정에서의 분쟁은 끊이지 않는 것 같다. 2019년에 내려진 2개의 대법원 판결(해사법률 207호에서 소개했음)에서 고박불량이나 적입불량으로 인한 화물손상의 경우 포워더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 과정에서 나름 이에 관련된 법리가 정리가 돼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법적 문제와 사실 인정의 문제가 혼합돼 있어서 하급심에서 진행되는 재판에서는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대표적인 사실 인정 문제는 플랫 랙 컨테이너를 갑판적 운송하게 되면(오픈 탑 컨테이너의 경우도 마찬가지임), 창내적 운송에 비해 화물손상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이유에서 해상운송인은 송하인(또는 화주)으로부터 갑판적 운송에 대해 사전에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 나아가 해운업계 실무에서도 해상운송인이 그러한 동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 그러한 문제들이다. 이러한 점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는 쌍방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게 되므로,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 자주 확신이 없는 것 같다. 우선 이러한 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명쾌하게 정리돼야 여러 관련 재판이 그 만큼 신속하고 편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번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위 문제에 관해 내려진 판결을 간략하게 소개하려 한다. 우리나라의 한일무역이라는 상호로 무역업 등을 하는 국내의 한 개인이 중국에서 유압식 프레스 브레이커라는 기계 1대를 수입해야 했고, 그래서 국내 포워더인 타오에게 운송의뢰를 했다.

최근의 대법원 판결(2018.12.13. 선고 2015다246186판결)에서 올바르게 확인되었듯이 포워더에게 운송을 의뢰하는 경우 화주는 해상운송뿐만 아니라 통관, 적하보험 가입 업무 등 일련의 업무를 모두 의뢰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인데, 이 사건에서도 한일무역은 타오에게 모든 업무를 의뢰했다.

타오는 중국 선적항의 자신의 파트너인 한봉이라는 중국 업체에 재차 해상운송 업무를 위임했다. 타오는 에이스 아메리칸에 적하보험을 가입했는데, 갑판적 약관의 작동을 못하게 할증보험료를 납부하는 조치를 하지 않고, 만연히 갑판적 약관이 그대로 작동되게 했다. 이 사건 화물은 오픈 탑 컨테이너에 얹혀서 그 오픈 탑 컨테이너가 선박의 갑판에 선적돼 운송되었다.

우리나라의 양하항에 도착해 양하하는 과정에서 해당 화물이 손상되었음이 발견되었고, 한일무역은 적하보험금의 지급을 에이스 아메리칸에게 청구했으나, 화물손상이 선적전에 발생한 것이라는 이유로 면책을 주장했다. 이에 앞서 에이스 아메리칸의 의뢰를 받은 국내의 모 검정회사는 화물손상이 선적전에 발생한 것이라는 의견으로 검정보고서를 발행했다. 그 검정보고서에서 결론 부분은 아니었지만 방론 부분에서 고박불량이 있었다는 의견도 개진했다.

그런데 양하항에서 발견된 것에 의하면 갑판에 적재돼 운송되었다가 손상된 것은 한일무역의 오픈 탑 컨테이너뿐만 아니라 또 다른 플랫 랙 컨테이너 역시 손상되었음이 발견되었다. 물론 이러한 부분에 대해 전문적인 조사는 전혀 행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일무역이 타오에게는 손해배상청구를, 에이스 아메리칸에게는 적하보험금 청구를 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도중 에이스 아메리칸이 타오의 화물배상책임보험의 보험자인 것이 드러났고, 이에 한일무역은 에이스 아메리칸에 대해 책임보험금 청구를 추가의 청구원인으로 추가했다.

재판에서 에이스 아메리칸은 추가의 면책사유로 담보범위가 축소되었고, 해당 손상 사고는 단독해손부담보조건(FPA) 아래에서 담보가 되지 않으니 면책이라는 주장을 추가했다. 타오는 손상이 선적전에 발생했다는 주장 외에 위 검정보고서에 의지해 사고의 원인이 고박불량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법원은 타오의 손상이 선적전에 발생했다는 주장이나 고박불량으로 인해 발생된 손상이니 자신은 면책된다는 주장을 모두 배척하면서 타오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10.25. 선고 2018가단5246364 판결). 다만, 법원은 중량당 책임제한이 적용돼 타오의 손해배상책임이 제한된다고 판시했다. 한편, 에이스 아메리칸은 적하보험자로서는 보험금 지급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화물배상책임보험이 보험자로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 대해 쌍방이 항소를 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 판결문은 어떤 근거로 고박불량으로 인해 발생된 손상이니 자신은 면책된다는 타오의 주장을 배척했는지 상세히 밝히지 않고, 타오의 주장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판결이 플랫 랙 컨테이너 화물의 고박불량과 갑판적 운송 문제에 대해 다소라도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한다.

고박불량이라고 본 검정보고서를 신뢰하지 않고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이 비록 산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원고 제출의 증거를 더 신뢰했다는 것은 법관으로서 대단한 용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사안에서 화주의 피해가 일부 회복돼 다행이기는 하나, 여전히 플랫 랙 컨테이너 화물의 고박불량과 갑판적 운송과 관련해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들에서 법원이나 사건 당사자 그리고 그 대리인들은 무엇인가 명확한 기준을 얻어내지 못하고 어렵게 소송을 하고 있는 현실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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