耕海 김종길(010-5341-8465, jkihm@hanmail.net)

▲ 耕海 김종길

맨손체조

꼭 45년 전이다.

스키의 나라 노르웨이에서 일이다. 나는 「노르웨이 쉬핑 아카데미」에서 해운Shipping을 공부했다. 노르웨이에 도착했던 8월에 자정인데도 깜깜하지 않고 하늘에 햇빛의 희미한 여운이 남아있었다. 마치 새벽 여명黎明처럼. 하지에 도착하였더라면 백야를 제대로 볼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러다가 추분을 지나자 하루가 다르게 해가 뚝뚝 떨어졌다. 대낮 시간인데도 가로등이 거리를 밝혀주었다. 눈발이 휘날렸다. 제설차가 도로에 쌓인 눈을 치웠다. 산복도로는 차단되어 스키코스가 됐다.

스키세미나에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처럼 스키를 전연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모였다. 스키와 스틱을 대여해 주었다. 날렵한 젊은 강사가 스키 기초를 설명하고서 시범을 보였다. 처음이라 잘 될 리 만무했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야단법석이었다. 스키 모서리에 주저앉아 꼬리뼈가 부서진 듯 아팠다.

끝나고 하룻밤을 자고 나니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 전신이 쑤시고 아팠다. 견딜 수 없어 약국엘 갔다. 약을 달라고 했더니 약사가 “처방전은?”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국에서 의약분업이 되지 않을 때라 처방전을 몰랐다. 난감했다. 사정사정해 아스피린 몇 알을 사서 먹었다.

4주간 훈련이 끝나 스키 디플로마를 받곤 내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축구, 배구, 탁구를 가뭄에 콩 나듯이 하였으나 소질도 취미도 없어 운동에 담을 쌓고 살았다. 그래서 내 근육과 뼈가 산성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겁이 났다. 맨손체조라도 해서 몸의 유연성을 찾아야만 했다.

공무원 때의 국민보건체조나 새마을운동체조를 해보려고 하였으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대학 때의 맨손체조를 이리저리 꿰맞춰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되살아났다. 기숙사 생활 3년 동안 매일 해양대학 체조를 하였기 때문에 뇌와 신체에 입력되었음인지 15년이 지났는데도 되살아났다.

일본체육전문학교 출신의 김승만 교수께서 고안한 해양대학체조를 배웠다. 교수의 체격이 훤칠하여 로마조각상처럼 수려했다. 율동이 유연했다. 우렁찬 구령이 운동장을 꽉 채우고도 넘쳤다. 교수에 매혹되어 체육 시간이 기다려졌다. 체조가 재미있었다. 매일 아침 6시에 운동장에서 전교생 조회시간에 이 체조를 했다. 조회가 끝나면 왕복 4km 구보를 했다. 이렇게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맨손체조는 신체의 조화로운 발달을 위하여 고안된 운동이다. 기구나 시설을 이용치 않고 좁은 공간에서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전신운동이다. 18세기 스웨덴의 P. Ling이 신체의 과학적인 원리를 기초로 고안했다.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다. 나이와 체력에 맞추어 방법과 운동량을 선택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 유연성과 기초체력을 향상시킨다. 자세도 교정시켜주고 피로 회복에도 효과가 있다.

이러한 맨손체조를 스키세미나 이후 지금까지 45년을 계속했다. 아침 일찍 거실에서 유리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해양대학체조를 했다. 그래서인지 80을 훌쩍 넘겨 체력은 소진되었으나 체격은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허리와 다리가 꾸부정하지 않고 꼿꼿하다. 어깨도 한쪽으로 기울거나 처지지 않고 바르다. 그뿐만 아니라 잠 못 들어 수많은 밤을 지새우던 스트레스와 무력감도 잠재워주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승만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명복을 빈다. 해양대학체조를 고안해 주셔서 많은 동문에게 건강의 혜택을 주셨다. 체육 시간에 그 늠름하셨던 모습이 어제인 듯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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