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경영학 박사(한국물류포럼 대표, 전 KMI 기획조정실장)

박태원 박사
박태원 박사

최근 의대에 도전하려는 직장인이 부쩍 늘었다. 과거에도 의대 진학반을 찾는 직장인은 있었다. 20대 중반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정도가 의대에 도전할 수 있는 ‘연령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올해 들어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직장인들이 의사가 되겠다고 입시학원에 몰리고 있다. 이미 높은 연봉에 고용도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지만, 의사만큼의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고 이들은 하소연한다.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2023학년도 대입 자연 계열 정시 모집에서 상위 20개 학과는 의·치의예과가 싹쓸이했다. 서울대에 합격할 만한 수험생들이 의대·약대 졸업장을 좇아 다른 대학을 선택한다. 정부가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비를 지원하는 영재학교 학생들마저 의대·약대를 선호한다. 심지어 반도체 등 첨단학과 이공계 학생 일부도 중간에 그만두고 의대·약대로 빠져나간다. 의대 블랙홀이 대한민국을 집어삼키고 있다.

지난해 8월에 인도 찬드라얀 3호가 세계 최초로 달 남극에 착륙했다. 우주개발 강국인 러시아, 일본은 실패했으나 인도가 해냈다. 인도 우주개발의 중심에는 인도공과대학(IIT)이 있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대표 등 미국 IT 기업 수장들을 배출한 곳이다. IIT는 인도 국부 자와할랄 네루가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과학’이라며 설립한 대학이다.

우리에게도 희망은 보였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발한 자율주행로봇이 지난해 6월에 국제 사족(四足)보행 로봇 경진대회에서 우승했다. 미국·홍콩·이탈리아·프랑스 등 11개 팀이 참가한 대회에서 2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큰 점수 차로 따돌렸다. 대부분의 참가 팀이 사람이 로봇을 조종한 것과는 달리 KAIST는 자율보행 방식을 택했다. 보행 중에 넘어져도 곧바로 일어나 임무를 수행하는 재회복 기술이 월등했다.

이공계 이탈의 가속화는 국가 경쟁력의 약화를 불러온다. 의대 쏠림 현상을 억제하고, 확실한 과학기술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대학의 첨단학과 정원이 적어서 인재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깨어진 것이 문제다. 취업이 불안정한데 처우도 좋지 않다. 박사를 해도 그만한 보상을 못 받고 창업도 힘들다.

마도로스의 꿈을 안고 해양대학교를 선택한 학생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이 있다. “3시하고 튀자.” ‘3시’는 ‘3년 시마이’의 줄임말이다. 남학생의 경우, 병역특례가 인정되는 최소기간인 3년만 배를 타고 하선하는 것을 뜻한다. 해양대학교 학생들은 왜 ‘3시하고 튈’ 마음을 먹었을까? 왜 일찍이 마도로스의 꿈을 접으려 할까?

정식 선원이 되기 위해서는 ‘선원 훈련에 관한 국제협약(STCW)’에 따라 최소한 1년간 배에서 실습 경험을 쌓아야 한다. 해사고나 해양대 학생들은 보통 학교에서 운영하는 선박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는다. 나머지 기간은 해운회사의 외항선에서 실습 기간을 채운다. 이들 실습생은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면서, 인권이 침해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실습생 신분이라서 오롯이 혼자서 감내할 수밖에 없다. 마도로스의 꿈이 첫걸음부터 삐꺽거린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나라 해기사(배 운항에 필수적인 선장·기관사 등 선원) 이직률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청년 해기사의 5년 내 이직률은 78%에 이른다. 이렇게 바다를 떠나는 20∼30대 청년 선원이 계속 늘어나면, 국적 선원의 수급 불균형은 더욱 나빠진다. 선원의 고령화 문제도 한층 더 심각해진다.

우리 해기사들의 이직률 급증은 열악한 처우와 우리 국적선사와 외국 선사와의 임금 격차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해기사가 장기간 승선과 만족스럽지 못한 근무조건에도 불구하고 고소득·전문직이라는 매력으로 선망하던 직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 문화'가 스며들면서, 해기사는 더 이상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다. 그만큼 한국인 해기사의 부족 현상도 심각해졌다.

지난해 11월에 외항 상선 인력난을 해소하는 계획이 담긴 노사정 공동선언문이 채택되었다. 승선 기간을 현행 최대 6개월에서 4개월로 단축하고, 유급휴가 일수를 8일에서 10일로 확대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선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승선 기간은 단축하고 휴가를 늘린 것이다. 국제 선박에 최소한 한국인 선원 5천 명 이상의 고용을 유지하고, 한국인 선원 의무 승선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15년 만에 노사정이 이뤄낸 성과라고 하지만, 외항 선원 인력난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나라는 선원에 대한 처우 측면에서 해운산업을 중시하는 여타 국가들에 비해 열위에 있다. 주요 국가들은 선원 소득에 대해서 전면적인 비과세를 적용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3개월 승선, 3개월 휴가가 원칙이다. 외국 선사 중에는 2개월 승선에 2개월 휴가인 곳도 있다. 임금 역시 국적선사의 선장·기관장 월급의 1.5배에 달한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하는 외항 선원이 매력적인 직업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처우 개선이 우선이다. 우리 해기사들이 자긍심을 갖고 장기간 근속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적정한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젊은이들에게 마도로스의 꿈을 되살릴 수 있다. 그래야 우리 해기사들이 우리 경제영토인 국적 선박에 터전을 잡고 오대양 육대주를 마음껏 누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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