弔 辭嗚呼라!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언제인가는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섭리를 모르지 않습니다. 하오나 김 회장께서 어느새 이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되어 훌쩍 떠나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보니 새삼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옛말에 '인생 70 古來稀'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는 말 그대로 옛말이 아니옵니까? 米壽는 물론이거니와 白壽도 드물지 않을 만큼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이 때 얼마나 바쁜 일이 있으셨기에, 이렇게 일찍 사랑하는 가족과 아직 어리석기 짝이 없는 후배들을 버리시고 떠나시었는지 막막한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一家의 어려움에 즈음하면 賢妻를 생각하고, 國難에 즈음하면 名相을 생각한다' 하였는데, 막상 이러한 자리에 서고 보니 회장님께서 우리 해운업계에 얼마나 큰 어른이시었는가를 다시 한번 느끼옵니다.일찍이 海技士로서 바다를 누비시다가 뜻을 세워 天洋油槽, 天敬海運 등의 기업을 세우고 경영해 오신 일들도 우리 후배들에게 큰 모범이 되셨습니다만, 그보다 어지럽기 짝이 없는 우리의 풍토 속에서도 언제나 순리적으로 기업을 경영하시고자 한 회장님의 인품에 우리 후배들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뿐만 아니라 회장님께서는 일찍이 해운기업을 창업한 선각자로서 우뚝 서 계셨음에도 영광스러운 일에는 언제나 한 발자국 물러나 계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로 크고 작은 어려운 문제가 일어날 때면 말 없이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남몰래 앞장을 서시었습니다.故 尹常松 박사께서 재단법인 한국해사문제연구소를 세우실 때에도 다른 어떤 분보다 앞장서서 지지하셨을 뿐 아니라,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物心兩面으로 큰 지원을 해주셨음에도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시어, 명예직에 불과한 理事라는 직함까지 사양하시다가 창립 만 4년이 지난 1975년에야, 그것도 윤 박사의 강권에 겨우 수락하시었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김 회장님께서는 모든 일에 그러하시었습니다. 한국해양대학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지원이 얼마나 컸고, 한국선박대리점협회 회장으로서, 또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으로서 남들이 꺼려하는 뒤치다꺼리만 도맡으셔 왔는가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그럼에도 그러한 사실을 내 세우는 일이 조금도 없으셨을 뿐 아니라,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섭섭해하시는 일도 없으셨습니다. 마치 한 마리의 鶴처럼 고고하시었기에 조금은 고독하시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어쩌다 私席에서 그런 얘기를 나누게 되면, 인생의 깊이로 깊게 패인 주름살을 활짝 펴시며, '숲이 우거지면 새들은 깃들게 마련'이라고 破顔大笑하시던 일이 눈에 선합니다.김 회장님! 우리 해운계는 아직 새가 깃들만큼 우거진 숲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더 황폐해지고 있는지도 모르옵니다. 이러한 때 어찌 홀로 눈을 감으셨습니까? 이제 다시는 김 회장님의 높은 인품, 깊은 고고함을 더 이상 접할 수 없다고 생각하오니, 참으로 허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고 떠나셨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운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어찌 하겠습니까? 그저 슬픔을 가누고 회장님께서 내세에는 보다 큰복을 누리시기를 삼가 빌 뿐이옵니다. 부디 暝目하시옵소서 2002년 6월 8일財團法人 韓國海事問題硏究所 理事長 朴 鉉 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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